교육부가 지난 12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발표했다. 이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라는 것은 정부 및 여당 관계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랫동안 염두에 둔 ‘올바른 역사관 확립’ 계획을 이따금 내비치다가 지난해 오류 및 친일, 독재 미화 논란을 일으킨 교학사 교과서를 통해 그 계획을 실행하려 했다. 그러나 채택률이 0%에 그쳤고 그런 뒤 나온 것이 바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다.
이에 야당과 학계, 교계, 그리고 일반 시민들도 반대 성명을 내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친일, 독재를 미화하여 역사를 왜곡, 독점하려는 정부와 여당의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서다. 야당과 시민사회가 거세게 반발하자 13일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권이 불필요한 논란으로 국론 분열을 일으키”지 말라는 발언을 했고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이념편향적 역사교과서를 갖고 우리 어린이들에게 가르쳐선 안 된다는데 이를 극렬히 반대하는 이유가 뭐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기존의 검인증 교과서들이 비교적 특정 이념에 치우지지 않았다고, 가치중립적이라고 재반박할 수도 있다. 외려 정부가 추진하는 교과서가 우편향이라고, 역사 왜곡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각계각층 연일 반대 시위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순수하고 100퍼센트 객관적인 역사서, 특정 이념 및 가치관에 치우지지 않은 역사서가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방대한 역사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기록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이 이념 및 가치관에 따라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것을 ‘선별’해서 ‘정리’하고 그에 대한 ‘해석들’을 덧붙이는 것이다. 예컨대 친일파 후손에게는 삼일운동과 위안부 같은 주제보다는 (그들이 보기에) 근대화 같은 식민지배의 긍정적 측면이 더 중요하기에 후자를 강조하려는 것이다. 또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보다는 그것을 희생해서라도 이룬 경제성장이 더 중요하기에 새마을운동, 경부고속도로 건설 같은 내용을 부각하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반대의 이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강조점과 관점이 다를 것이다. 요컨대 어느 정도 균형 잡힌 역사책은 있을지 몰라도 완벽히 중립적인, 순수한 역사책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대다수 시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시민들 대다수가 민주주의 및 인권에 대한 감성지수가 높기 때문이다. 기존의 검인정 교과서들에서 대체로 공유되어 온 민주주의의 가치를 축소하고 친일, 독재, 무분별한 경제개발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교과서를 만들려는 시도와 그 내용에 불편함과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둘째, 국정 한국사 교과서의 미리보기 판이라 할 수 있는 교학사 교과서가 좌우를 막론한 역사학자들에게서 수많은 오류, 표절이 있다는 문제 제기를 당함으로써 이념을 떠나 기초적인 신뢰성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위안부, 4·3사건, 광주항쟁 등에 대한 서술에서는 입장에 따른 서술의 차이를 보인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보이는 교묘한 서술로 사실관계를 호도했다는 점에서도 불신을 자초했다. 게다가 국정화 교과서를 단시일 내에 무리하게 강행하려는 계획이어서 신뢰하기가 더더욱 어렵다. 무엇보다 중요한 셋째는 국정화를 통해 역사 기술과 해석을 독점하려 하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완벽히 객관적인 역사책이란 없다. 따라서 최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한 여러 역사 교과서가 있어야 하고 또 역사학자들이 공통으로 인정하는 사실은 무엇이고 또 서로 논쟁하는 쟁점들은 무엇인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교과서들이 있어야 할 따름이다.

역사 권리 빼앗는 행위

박근혜 대통령은 ‘올바른 역사관’을 이야기하지만 ‘이념편향적’ 역사관만 존재한다. 다만 그 이념이 누군가에는 민주주의, 인권, 평화, 공동체적 가치이고 누군가에는 독재와 무조건적 경제개발일 뿐이다. 전자에게는 민주주의가 ‘올바른’ 것이고 후자에게는 독재와 성장이 ‘올바른’ 것이다. 과연 어떤 역사관이 올바른지, 정의로운지를 판단하는 것은 독자인 우리 학생들이 역사 시간에 공부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면서 스스로 결정할 사안이다. 곧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이 권리를 빼앗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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